인류를 구원할 답을 찾아 떠나는 우주여행, 영화 인터스텔라 (IBS 뉴스)
▲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탄 우주선은 인류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기 위해 웜홀을 통해 이동한다.
언젠가 지구 환경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다면, 인류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할까. 영화 인터스텔라(2014)는 모래와 먼지로 가득한 황사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렵고, 유일한 식량인 옥수수도 병충해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류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제목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항성 간 우주여행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는 다른 태양(항성)계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의 행성을 찾아내야 하는 우주비행사들의 분투를 그렸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의 임소희 연구원은 이 영화가 우주에서의 시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과학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며 추천했다. 인터스텔라는 실제로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 교수의 철저한 자문을 받아 제작돼 상대성 이론의 학습 교재로도 손색없다는 호평을 받았다.
영화에서 NASA는 인류를 구원할 프로젝트로, 다른 은하계로 통하는 지름길인 웜홀(wormhole, 다른 시공간을 잇는 통로)을 통과해 인류가 이주할 새로운 행성을 찾기로 한다. 프로젝트를 맡은 브랜드 교수는 두 가지 계획을 제안한다. 플랜 A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여 전 인류를 이주시키는 것이고, 플랜B는 지구에 남은 인류는 포기하고 우주선에 수정란을 싣고 새로운 행성으로 가 인류의 종족을 보전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우주비행사 쿠퍼는 플랜 A를 실현하겠다는 브랜드박사를 믿고, 플랜B를 실현하기 위해 태양계 너머의 새로운 은하로 떠난다.
▲ 우주비행사 쿠퍼는 인류 구원 미션을 위해 가지 말라는 딸 머피를 지구에 남겨두고 시간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태양계 너머 다른 항성계로의 우주여행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이 걸린다. 웜홀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우주선이 다른 태양계에 도달하기 전에 우주비행사가 먼저 수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웜홀을 통해서 시공간의 휘어진 면을 따라 이동해야만 소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웜홀을 이용했음에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구에 남겨진 쿠퍼의 딸이 아버지를 다시 만날 때까지 무려 89년이 걸리게 된다.
"우주선이 웜홀을 통과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실제로 이 장면에서 표현되는 웜홀의 크기는 킵 손 교수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계산했다고 해요. 웜홀의 굽어진 공간에 의해 주위의 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계산한 것이죠. 웜홀이 이론적으로 계산돼 사실적으로 구현된 점이 정말 놀랍습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도 과학자들에게 시간과 공간은 독립적인 변수였지만,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을 하나의 유연한 구조물로 인식했다. 시공간은 변할 수도, 이동할 수도 있고, 굽거나 휘어질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이론적으로 웜홀은 매우 빨리 열리고 닫히기 때문에 존재를 증명하기도, 관측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직 웜홀의 존재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킵 손 교수는 웜홀이 분명히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웜홀의 존재 증거는 바로 중력파다. 중력파는 2개의 블랙홀이 서로 충돌할 때 발생하는데,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 하지 않기 때문에 발원 지점으로부터 지구까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도달한다. 즉, 중력파는 우주 초기에 생성된 입자들의 분포로 우주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알려줄 단서와도 같다. 킵 손 교수 연구팀은 최근, 레이저간섭계중력파천문대(LIGO)를 통해 웜홀의 증거인 중력파를 최초로 관측하는데 성공했다.
▲ 칠판에 보이는 수식들은 킵 손 교수가 블랙홀과 웜홀에 관한 방정식을 직접 적은 것이다. 영화 속에서 머피는 이 칠판을 보고, 플랜 A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찰나의 순간에 열리고 닫히는 웜홀, 그리고 웜홀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 중력파 검출. 지구 물리학자들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에 집착한다. 그런데, 우주 탄생뿐만 아니라 생명 탄생에 대한 비밀도 바로 이 찰나의 순간을 관찰함으로써 밝혀질 수 있다.
"우리 몸의 단백질과 같은 생체 분자가 빛과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질병 발현의 과정 까지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찰나의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펨토초(1천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체 분자의 작용기작과 순간적인 움직임을 알 수 있는 분자 동력학 분야가 바로 제가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영화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 비행사들이 직접 그 행성에 착륙하여 정보를 얻는다. 실제로 외계 행성에 대한 정보는 케플러 우주 망원경으로도 행성의 구성 성분을 제대로 밝혀내기 힘들다. 행성에서 나오는 빛의 분광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원리지만, 행성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다. 임 연구원은 분자 동력학 연구가 외계 생명체 탐사의 답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 직접 밀러 행성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파도에 휩쓸리면서, 탐사팀은 지구 시간으로 23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분자의 입체구조를 규명할 수 있는 실험 도구인 '라만 광학활성(Raman Optical Activity, ROA)' 측정장비를 화성에 보내 생명체 탐사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보통 작은 생체 분자는 여러 진동 모드를 갖고 있는데, 진동 모드가 라만 활성을 갖고 있다면, 펨토초 펄스와 상호작용하여 신호가 나오게 됩니다. 작고 민감한 이 신호를 빠른 시간 내에 분석할 수 있다면, 여러 학문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라만 광학 활성은 임 연구원의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임 연구원은 현재 펨토초 레이저를 사용해서 자극 라만 광학 활성 측정을 하는 장비를 구축하고 있다. 임연구원은 이 장비를 활용하면, 생체 분자가 어떤 방식으로 인체 내에서 역할을 수행하는지 빠르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만 광학 활성 측정 장비 기술은 외계 생명체 탐사뿐만 아니라 물리, 화학, 생명과학 또는 다른 어떤 학문에도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 연구원은 영화 속에서 우주 비행사 쿠퍼의 대사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를 명대사로 꼽았다. 브랜드 교수가 플랜A와 플랜B를 언급하며 인류가 살아남기 힘든 운명임을 설명하자, 쿠퍼가 이에 대답하는 대사다.
▲ 임소희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원은 펨토초 레이저를 사용해 라만 광학 활성 측정 장비를 구축하고 있다.
"연구는 항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연구의 목표 달성보다는 작은 하나하나의 결론 도출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호지자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이죠. 희망을 갖고, 연구에서 답을 찾으려면, 자신이 왜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 임 연구원은 영화 인터스텔라로 우주와 시공간, 중력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을 위해, 또 다른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를 추천했다. 우주의 진공 상태를 유영하며 미션을 수행하는 우주 비행사의 모습이나 우주선의 도킹(docking), 이착륙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된 장면들을 높게 평가했다.
"저는 무엇이든지 직관적으로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하는 연구도 광학 활성 이미징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이죠. 볼 수 있다면 이해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더 잘 믿을 수 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우리에게 우주와 시공간, 중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보여준 셈이죠. 과학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화 속 허구(픽션)를 어떻게 실제 과학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연구 중인 프로젝트가 누구도 해내지 못한 도전적인 연구라고 생각한다며 웃는 임 연구위원의 모습에서 강한 자신감이 비쳤다. 앞으로 그의 연구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임 연구원은 과학자로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임 연구원 또한 스스로의 연구에서 답을 찾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