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식료품 창고’에서 벌어지는 일 실간 관찰
우리 몸의 ‘식료품 창고’인 지질 방울 내 물질대사를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게 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조민행 단장(고려대 화학과 교수) 연구팀은 살아있는 세포 내 지질 방울에서 중성 지질이 합성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지질 방울은 우리 몸의 세포들이 영양분을 축적하는 작은 세포 기관이다. 식료품 창고에 음식을 축적하듯 영양분을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지방 형태로 에너지를 공급한다. 최근 지질 방울이 다양한 세포 소기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질 독성 조절, 세포 통신 등의 다양한 대사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며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질 방울의 크기와 총량이 비만, 비알코올성 지방간 등 질병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질 방울 기능 연구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존 연구에서는 형광 현미경을 사용해왔는데, 지질 방울의 주요 내용물인 중성 지질에 특이적이고 효과적인 형광 표지 방법이 없어 중성 지질의 성분과 양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형광 표지에 사용되는 염료는 광표백 현상으로 인해 살아 있는 세포의 지질 방울 대사를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연구하기도 힘들었다.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은 기존 한계를 넘어, 지질 방울의 대사를 장시간‧실시간 관측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연구진은 자체 개발한 이중 색상 적외선 광열 현미경을 이용해 지질 방울의 공간 분포 및 중성 지질 합성 과정을 관측했다. 이 현미경을 이용하면 특수 고안된 형광 염료를 투입하지 않고도 적외선 레이저를 이용해 생체 분자들을 선택적으로 정량하고, 추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세포가 과량의 지방산에 노출되면 발생하는 지질 독성에 의해 세포 내 중성 지질 합성이 촉진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어 중성 지질이 합성될 때 나타나는 신호 변화를 바탕으로 개별 지질 방울 속에 존재하는 기존의 중성 지질과 새로 합성된 중성 지질 간의 상대적 비율을 시간에 따라 분석해냈다.
제1저자인 박찬종 연구원은 “상대적 비율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통해 중성 지질의 합성 속도를 알 수 있다”며 “암, 비만 등 많은 질병이 중성 지질 합성 양상 변화를 수반한다고 알려진 만큼, 우리 연구진이 개발한 중성 지질 대사 관측 방법론은 다양한 질병 진단을 위한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조민행 단장은 “세포 내 지질 방울의 기능에 대해 분자 수준에서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바탕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향후 세포 내 지질 방울이 질환에 어떤 역할을 미치는지 연구하여 간 질환을 진단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영국 왕립화학회(The Royal Society of Chemistry)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케미컬 사이언스(Chemical Science, IF 9.969)’ 1월호 표지논문(1월 28일 발간)으로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