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전달하는 세포 속 '우편배달부'도 교통체증 겪는다
호르몬 전달하는 세포 속 '우편배달부'도 교통체증 겪는다
서울의 내부 및 외곽 도로망으로 표현한 세포 속 소포들의 트래픽 현상. IBS 제공
세포 속에서도 출퇴근길 같은 교통 체증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규명됐다. 세포 속을 이동하는 '소포(vesicle)'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현미경을 활용한 분석 결과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조민행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단장과 홍석철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살아있는 세포 속에서 활발하게 이동하는 '소포(vesicle)'의 움직임만 선택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현미경을 개발해 1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고 15일 밝혔다.
소포는 호르몬, 효소, 신경물질 등을 담아 이들이 필요한 세포 속으로 적시적소에 배달하는 일종의 우편배달부다. 얇은 지질막으로 둘러싸인 작은 주머니처럼 생겼다. 우편물이 오배송되듯 소포가 엉뚱한 곳에 물질을 배달하거나 운송이 지연될 경우 다양한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소포 수송의 작용 원리를 규명한 연구가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소포의 수송 원리, 소포와 세포 소기관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연구는 주로 형광 현미경을 사용했다. 형광 현미경은 형광 표지된 특정 소포들의 수송 과정만 형광 신호가 유지되는 제한된 시간 내에 관찰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세포 속의 복잡한 골격망을 따라 수송되는 수많은 소포의 전체적인 수송 현상을 시각화하기는 어려웠다.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간섭산란 현미경을 이용해 복잡한 세포 속에서 이동하는 소포들의 이동 궤적을 장시간 정밀하게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3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세포의 핵 주변에서부터 세포 가장자리 돌출부인 라멜리포듐으로 이어지는 영역에서 100개 이상 소포의 이동 궤적을 동시에 추적했다. 추적 영상은 초당 50헤르츠(Hz)의 영상 촬영 속도로 얻었다.
이 과정에서 획득한 소포의 위치 정보를 통해 '세포 내부의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는 골격망의 공간적 분포를 고해상도로 재구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기존 연구에서 알려진 바 없는 소포의 새로운 수송 특성도 확인됐다. 여러 소포가 함께 긴 거리를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집단 수송 방식, 수송 중인 소포 뒤에 달라붙어 함께 이동하는 히치하이킹 수송 방식 등을 통해 세포 속 정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송 전략을 갖추고 있음을 밝혀냈다.
제1저자인 박진성 연구원은 "매우 복잡하고 미시적 세계인 세포 속 환경에서 대도시 사람들이 도로 위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교통 체증 현상이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조민행 단장은 "살아있는 세포를 형광에 의존하지 않고 초고분해능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생명현상을 미시적 관점에서 생생하게 밝혀낼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의의를 밝혔다.
조민행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단장, 홍석철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박진성 IBS 연구원. I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