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칼럼] 왜 페로브스카이트인가
[리더스칼럼] 왜 페로브스카이트인가
예년보다 이르게 벚꽃이 만개했다. 이상 고온 현상 때문이다.
그간 인류가 기후를 변화시켜 왔지만 이젠 기후 변화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배출을 상당한 수준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금세기 말 지구의 기온은 2도 이상 추가로 상승한다. 인류의 생존 기반 자체가 무너질 위기 상황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며 현대문명을 이끌었던 화석에너지는 이제 인류가 해결해야 할 난제가 됐다.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고 있는데 과학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탄소배출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주목받는 것이 태양이다. 태양은 적어도 40억년 동안 무공해 청정에너지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학자들은 태양광을 이용하는 각종 광전소자 개발을 통해 에너지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폭발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물질이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다. 페로브스카이트에 기반을 둔 태양전지의 경우 현재 상용화된 실리콘 태양전지를 뛰어넘는 효율을 낼 수 있어 새로운 차세대 에너지 소자로 주목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왜’ 페로브스카이트여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구조가 복잡해 다양한 형태로 빛과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 물리·분광학적 특성을 규명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연구단은 페로브스카이트가 어째서 태양광을 전기로 바꾸는 데 효율적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비밀을 밝혀냈다. 다양한 물질에서 일어나는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단위에서 연구해오던 필자에게 페로브스카이트는 매력적인 물질이었다. 수많은 연구가 수행되고 있음에도 본질적 모습을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뭔가 고고해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정복욕구를 자극했다. 그래서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 물질의 특성을 알아내기도 했다.
지금까지 페로브스카이트는 주로 재료공학이나 화학공학 분야에서 분자적·화학적 특성에 변화를 주면서 안정적이고 고효율을 유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뤄져 왔다. 필자는 페로브스카이트와 잘 알려진 나노 구조를 결합해 두 물질 간 물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페로브스카이트의 비밀을 엿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2년이 넘는 연구 끝에 그 해답을 찾았다.
금속과 유전체로 구성된 나노 크기의 메타물질 위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올리고 빛을 쪼였을 때 발생하는 엑시톤(전자와 정공의 결합체)의 거동을 분석했는데 엑시톤의 쌍극자 모멘트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메타물질 위 엑시톤은 수명이 10배까지 길어졌다. 엑시톤의 수명은 태양전지의 광전변환 효율에 직결된다. 더 나아가 메타물질과 페로브스카이트를 이용해 태양전지와 비슷한 작동원리를 갖는 광검출기를 제작했더니 빛을 전기로 변환하는 효율이 2.5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는 왜 페로브스카이트에 주목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온 필자의 여정은 결국 효율을 대폭 상승시킨 차세대 광전소자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은 기초연구지만 기존 페로브스카이트 연구의 최첨단 기술과 접목된다면 혁신적인 소자 개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미력하나마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광진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교수
nbgkoo@heraldcorp.com
출처: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30410000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