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도 이해 못한 비밀, 韓 과학자가 100년만에 풀었다 [과학을읽다]
IBM이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인간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거시' 세계의 비밀을 알아 낸 후 신의 지위를 엿보는 듯 했다. 그러나 전기와 화학 등의 등장과 함께 '미시 세계'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도대체 전기가 왜 어떻게 빛과 열을 만들어 내는 지, 여러 가지 물질들이 왜 서로 섞여 독특한 성질이 만들어지거나 분류돼 다른 물질이 되는 지 고전역학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100년 전에 태동한 것이 양자역학(양자물리학 또는 양자과학·Quantum mechanics)이다. 물리적으로 가장 작은 단위(원자)를 구성하는 핵과 전자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양자역학은 이후 급속도로 발달한 핵·원자력 공학, 전자 공학, 고분자 공학 등 현대 과학기술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여전히 신비에 휩싸여 있다. '개념'은 있지만 누구도 '이해'하거나 검증하지 못한 이론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양자물리학자들 조차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전세계에 아무도 없다",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는 말을 하고 있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1928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제시한 전자가 입자와 파동의 특징을 함께 갖고 있다는 ‘상보성의 원리’다. 파동이면 파동이고 입자면 입자지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우리가 아는 가장 천재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조차 죽을 때까지 이같은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빛이 입자로 구성돼 있다는 '광양자' 가설을 발표할 정도로 양자역학의 초석을 세운 학자였지만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슈뢰딩거 등과 함께 끝까지 보어와 하이젠르크가 내놓은 이같은 내용의 '코펜하겐 해석'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아인슈타인은 거시 세계를 이루고 있는 미시 세계는 물질이 파동과 입자의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가지며, 양자 중첩·양자 얽힘 등에 따라 확률로 정해지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어 인간의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코펜하겐 해석에 맞서 '전자는 실재한다'며 세계는 '이해'가 가능한 곳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도 물리학계에선 상보성의 원리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정성적인 관계로만 이해해 왔다. 최근 양자컴퓨터 실현이 초읽기에 들어설 만큼 양자과학이 진보했지만, 여전히 ‘양자 물체의 파동-입자 이중성 및 상보성’, ‘두 양자 물체의 파동 함수 얽힘’ 등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개념들이 많다. 특히 정량적인 상보성 원리는 양자과학에 필수적인 파동함수의 중첩과 얽힘을 이해하는 근간이 된다.
19일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조민행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과 윤태현 연구위원 연구팀이 100년 동안 양자역학의 최대 난제로 꼽혀 온 양자 상보성 원리를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양자 물체의 파동-입자 정량적 상보성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안하고, 자체 개발한 장비를 통해 이를 실험에서 입증한 것이다.
상보성 원리와 파동-입자 이중성을 엄밀히 검증하려면 파동성과 입자성을 각각 측정할 수 있는 양자역학적 복합시스템이 필요하다. 즉, 양자 입자를 만들어내는 장치, 양자 입자 위치 또는 경로의 탐지 장치, 중첩 상태의 양자 입자가 만들어내는 간섭현상의 측정 장치 등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까지 여러 복합시스템이 이론적으로 제안되고, 일부는 실험까지 진행됐지만, 양자 물체의 상보성과 입자-파동 이중성을 완벽하게 검증할 수 있는 장치는 없었다.
연구진은 새로운 실험 시스템인 ‘얽힌 비선형 광자쌍 광원(ENBS)’을 자체 개발해 이 한계를 돌파했다. ENBS 시스템은 기존 측정 시스템들과 달리 실험적으로 얽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즉, 양자 물체의 파동성과 입자성을 상보적 관계의 틀 안에서 실험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구진은 이 실험을 통해 양자 물체의 입자성과 파동성의 상호 연관은 물론, 둘 사이에 정량적 관계가 존재함을 증명했다. 이 결과는 보어의 ‘양자 입자의 파동성과 입자성은 서로 배타적이어서, 하나의 성질만 하나의 측정 장치로 알 수 있다’는 이론과 달리, 얽힘 정도를 조절해 배타적 성질 모두를 하나의 장치로 측정 가능함을 의미한다. 상보성의 원리 최초 제안 이후 약 100년 만에 파동-입자 상보성의 정량적 관계를 측정해냈다.
윤태현 연구위원은 “이 연구에서 제안 및 검증한 양자 복합시스템 실험장치를 이용한다면, 아직까지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여러 양자역학적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행 단장은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차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의 본질은 이중틈(double-slit) 실험의 이해에 있다’는 말을 남겼다”며 "이번에 새롭게 제안한 양자 얽힘 장치를 이용해 양자역학의 신비로운 특성들을 좀 더 깊게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