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 분광학 연구자 곽경원 교수가 빠진 실험
2차원 분광학 연구자 곽경원 교수가 빠진 실험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곽경원 고려대 교수가 고려대 화학과 학생일 때 ‘케미스코프’라는 동아리가 있었다. ‘케미스코프’라는 이름은 화학을 뜻하는 영어(chemistry)와 분광학을 가리키는 영어(spectoscope)에서 따왔다. 교과서 내용 말고 논문과 새로운 지식을 접해 보자는 게 동아리 목적이었다. 학생들끼리 해보려니 잘 안됐다. 그래서 지도교수를 모셔왔는데 그가 부임한 지 얼마 안됐던 조민행 교수였다.
곽 교수는 ‘케미스코프’ 때의 분광학 공부가 계기가 되어 대학원 석사 때 분광학자인 조민행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고려대 교수로 일하고 있는 지금은, 조민행 교수가 이끄는 IBS(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분자분광학 및 동력학) 소속 연구위원으로 일한다. 지난 5월 13일 찾아간 곽 교수는 고려대 R&D센터 건물 내 IBS연구단에 연구실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석사 때 적외선 2차원 분광학(이론)을 공부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으로 2003년에 유학가면서는 ‘이론’이 아닌 ‘실험’ 연구를 택했다. 곽 교수는 “이론 공부는 좀 아닌 것 같고, 나는 몸으로 하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선택의 배경을 설명했다. 전에 조민행 교수를 만났을 때 ‘2차원 분광학’은 특히 실험이 대단히 어렵다고 들은 바 있다. 이 말을 전하자 곽 교수는 “(내가) 말도 안되는 실험을 하고 있다”라며 웃었다.
스탠퍼드대학 지도교수는 마이클 페이어(Michael Fayer)였다. 그곳에서 2차원 적외선 분광학 실험을 배웠고, 좋은 논문을 썼다. 곽 교수는 “당시가 2차원 분광학 실험의 초창기였다”라며 2차원 분광학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원자 뭉치가 재배열하는 게 화학반응이다. 화학반응을 동영상 보듯이 눈으로 보면서 연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화학자는 갖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현실적으로 구체화한 게 펨토(Femto) 화학이다.”
펨토 화학은 펨토초 단위로 화학반응을 촬영한다. 펨토초는 1000조분의1초이니, 펨토초 단위로 화학반응을 찍고 이걸 이어붙이면 대단히 정밀한 연속 영상이 된다. 현재의 극장 영상은 초당 27회 간격으로 찍은 정지화면을 이어붙인 것이다. 그러니 펨토 화학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화학반응을 볼 수 있다. 수소 원자가 1회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펨토초다. 수소 원자의 움직임을 보려면 10펨토초보다 더 짧은 시간 간격으로 사진을 촬영해야 하는데 곽 교수는 그런 분자 카메라를 만들고 있다.
펨토초보다 1000배 긴 시간이 피코초다. 펨토초가 1000조분의1초라면, 피코초는 1조분의1초다. 피코초 동안에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분광학자들이 많이들 연구했다. 곽 교수가 ‘피코초 화학’ 분야에서 한 일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다.
유기화학 책에 보면 탄소-탄소 단일 결합(C-C)이 있고, 그 상태에서 탄소 두 개가 각각 회전한다. 탄소들이 돌아가면서 여러 가지가 생성되고 모양이 달라진다. 회전(rotation) 장벽을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유기화학 책에는 1.5킬로칼로리/몰(mol)이라고 나와 있다. 회전을 하기 위해 가해줘야 하는 힘의 크기를 가리킨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이 수치는 실험으로 확인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이론적인 계산 값이었다. 곽 교수는 2006년에 실험을 해서 이 수치를 알아냈다. 스탠퍼드에 가서 3년 차 되던 해였고, 그게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두 개의 연구 중 하나다.
레이저 펄스 여러 개 사용
일반적으로 하는 분광학은 물질에 빛 한 줄기를 쏴 그 빛을 분석한다. 곽 교수가 하는 2차원 분광학은 다르다. 빛, 즉 레이저를 여러 개 사용한다. 셋, 넷, 혹은 다섯, 여섯 개를 쓴다. 이들 레이저는 파장이 다르다. 서로 간에 시간 간격이 다른 레이저를 시스템으로 쏜다. 레이저의 진동주기도 다르고, 들어가는 시간도 다르게 해서 그걸 물질에 쪼인다. 이를 통해 촬영하려는 물질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얻어낸다.
어떤 주파수와 어떤 파동의 조합(pulse sequence)을 쓰느냐에 따라 특정한 작용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이론가가 제안을 한다. 이를 실험으로 구현하는 게 실험가가 하는 일이다. 곽 교수는 “박사 때 스탠퍼드에서 한 일이 2차원 적외선 분광학으로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2차원 적외선 분광학을 갖고 그렇게 빠른 시간대에서 나타나는 화학현상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곽 교수의 실험실 중 하나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건물 107호로 갔더니 문에 ‘2차원 적외선 분광학 연구실’이라고 쓰여 있다. 방 안에는 광학 실험실에 갔을 때 많이 본 장비들이 있었다. 방 안에 있는 장비들은 크게 보면 레이저 발생기, 그걸 조절해서 물체를 보기 위한 분광현미경 시설이다. 레이저 발생기는 800나노미터 파장에 해당하는 50펨토초 빛을 내놓는다. 이 빛이 다음과 그다음에 순차적으로 놓인 광학기기를 지나면 레이저, 즉 빛을 이루는 광자(photon) 에너지가 약해지면서 파장이 800나노미터에서 300나노미터~중(中)적외선으로 바뀐다. 곽 교수는 “특정 분자는 특정한 중적외선을 흡수한다. 특정 중적외선을 흡수하는가를 확인하면 그것이 어떤 분자인지 알 수 있다. 이걸 분자의 지문 영역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요즘 하는 연구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곽 교수에 따르면 펨토초 레이저를 갖고 연구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적외선 영역의 펨토초 레이저를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가시광선 영역에서 일을 한다.
2차원 분광학으로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
화학자에게 적외선 분광학이 좋은 점이 있다. 화학에 작용기(functional group)라는 것이 있다. 작용기는 CH그룹, CO그룹, OH그룹 등으로 분류되는데 빛을 쪼였을 때 작용기들이 흡수하는 빛의 진동수(frequency)가 다르다. 곽 교수는 “이게 앞에서 잠깐 말했던 분자의 지문 영역이다. 사람도 지문을 보면 지문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듯이, 분자 지문을 보면 어떤 분자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시광선도 분자들이 흡수하기는 하나, 대부분 비슷한 영역의 빛을 흡수하기에 좋은 분자 구별법이 못 된다. 반면 적외선으로 보면 분자의 종류와 구조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적외선은 실험이 힘들다는 점이다. 가시광선으로 하는 분광학자는 펨토초 레이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적외선을 쓰는 사람은 펨토초 레이저의 파장을 바꿔주는 일을 해야 한다. 예컨대 800나노미터 파장을 5마이크로미터로 바꿔야 한다. 파동의 길이를 6배는 길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곽 교수에 따르면 파장을 늘이는 게 어렵다. 이 과정은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것이어서, 레이저 자체를 안정화시키기도 힘들다. 또 가시광선은 관련 산업이 발전해서 광학 장비와 측정 장비가 좋은 게 많다. 이에 반해 적외선은 훨씬 못하다. 또 적외선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연구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곽 교수는 ‘펨토초 레이저’를 지금까지 설명했는데 펨토초 레이저보다 더 주파수가 짧은 ‘에토(atto)초 레이저’라는 게 있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고 2008년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의 스티븐 리온(Stephen R. Leone) 교수 연구실로 가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을 때 한 일은 ‘에토초 레이저’ 개발이었다. 에토초 레이저는 펨토초 레이저보다 진동수가 1000배 많다. 이걸 카메라 원리로 쓰면 셔터 속도가 ‘펨토초 레이저’를 사용할 때보다 1000배나 빠르게 된다. 진동수가 그렇게 짧은 빛을 사람이 만들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곽 교수는 “에토초 영역으로 가면 분자는 굳어 있다. 분자는 펨토초 영역에서 움직이니까, 그 밑으로 가면 분자는 조용해진다. 완벽하게 굳어 있다. 펨토초 레이저를 갖고 분자 안에서 원자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면, 에토초 분광학에서는 원자나 분자 안에서 전자가 움직이는 걸 보려 했다”라고 말했다. 광원, 즉 레이저를 만들고, 그 광원을 이용할 수 있는 광학기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그걸 갖고 새로운 현상을 보지는 못했다.
2011년 한국에 돌아와 중앙대 화학과 교수로 일했다. 중앙대 시절에는 실험장비가 없으니 이론계산을 하는 연구를 했다. 5년 근무하고 2016년 고려대로 옮기면서 실험실을 제대로 꾸렸다. 그가 처음 한 게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다.
리튬이온 배터리에는 액체 전해질이 들어 있고, 리튬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액체 전해질을 통해 흘러간다. 리튬이온이 양극 사이를 얼마나 빨리 흘러가느냐, 얼마나 효율적으로 가느냐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효율을 결정한다. 그때까지는 리튬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흘러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은 양극과 음극의 물질을 바꿔 배터리 에너지 용량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리튬이온이 양극 사이를 흘러갈 때는 리튬이온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 주변에 있는 용매들 뭉치와 결합해서 흘러간다. 덩어리로 흘러가는 도중에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관찰하면 어떤 용매를 썼을 때 리튬이온이 잘 작동하고, 어떤 경우에는 잘 작동하지 않는지에 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곽 교수 설명을 계속 들어본다.
“다시 말해 리튬이온이 흘러갈 때의 분자 운동을 연구하는 거다. 내가 만든 2차원 분광학 기기로 피코초 영역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걸 갖고 리튬이온이 용매들과 어떤 식으로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지, 그런 동력학을 연구했고, 2017년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보고할 수 있었다.”
추격형이 아닌 선도형 리서치를 꿈꾼다
곽경원 교수가 속해 있는 IBS연구단은 2016년 5월 개소식을 가진 바 있다. 그러니 곽 교수는 이즈음해서 학교를 옮긴 것이다. 곽 교수는 IBS연구단을 이끄는 조민행 단장으로부터 실험실 구축비를 넉넉하게 받았다. 사진기자와 함께 곽 교수가 사진을 찍으러 간 107호에 있던 ‘2차원 적외선 분광학’ 장비는 그가 제일 먼저 구축한 것이다. 거의 동시에 109호에는 ‘적외선 들뜸 탐지 분광기’를 만들었다. 또 다른 두 개의 실험실에는 각각 ‘가시광-적외선 합(合) 진동수 분광기’ ‘시분해 테라 헤르츠 분광기’를 만들었거나 구축하고 있다.
가령 ‘2차원 적외선 분광학’ 실험을 위해서는 장비에만 10억원이 소요됐다. 그런데 레이저만 나오게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진동을 막고 온도·습도 조절을 하지 않으면 레이저가 불안해진다. 방진과 온도·습도 조절을 위해 이 방뿐만 아니라 4개의 실험실 모두를 메탈로 싸서 건물로부터 고립시켜 놓았다. 여기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다. IBS라는 기초과학연구기관이 있어 연구비를 지원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곽 교수는 “과학의 진보를 보면, 새로운 측정 방법이 새로운 연구 영역을 연 경우가 많다. 특정 기기를 잘 만들어놓으면, 그 측정기기 하나가 확산시킬 산업적인 영역도 엄청나고, 또 새로운 사이언스가 생긴다. 장비 개발은 힘들고 실패할 확률도 높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성공하면 ‘추격형(follower)’ 리서치가 아니라 ‘선도형(first-mover)’ 리서치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들기 힘든 장비들을 구축했고, 이제 목표는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는 것이다. 비커 안에서 화학반응, 디스플레이 장비에 들어가는 OLED분자의 움직임, 그리고 바이오 쪽 연구로는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려고 한다. 현재는 치매를 일으키는 단백질 뭉침을 보고 논문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보면 나는 아직은 추격형 연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처럼 장비 네 개를 갖고 현상을 다 보는 곳은 없다. 우리는 다 보니, 통합적으로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빠르게 외국을 추격하고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야심만만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js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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