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포 내부 실시간 관찰하는 ‘눈’ 개발을 향해
박진성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연구위원
▲ 1993년作 영화 <쥬라기 공원>과 2004년作 <나비효과>는 모두 혼돈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출처: 유니버설 픽처스, 쇼박스)
1993년 개봉한 영화 ‘쥬라기 공원’과 2004년작 ‘나비효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두 영화가 모두 20세기 말 가장 각광받은 과학이론인 ‘혼돈(chaos‧카오스)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혼돈이론은 우리에게 ‘나비효과’라는 용어로 더 익숙하다.
과학자들은 예로부터 자연 현상을 수식으로 표현하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모습을 예측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 시도는 실험실 속 단순화된 상황에서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대기와 복잡한 해류, 뇌와 심장의 활동, 주식시장의 변동 등 다양한 자연 및 사회 현상은 수식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비선형계(nonlinear)의 특성을 갖는다.
지난 12월 서울 고려대에 위치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에서 만난 박진성 연구위원은 이런 비선형계의 물리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지구상 대부분의 자연 환경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 현상들은 여전히 현대 과학으로도 예측하기 힘들다”며 “비선형 동력학 및 혼돈 연구는 이와 같이 불규칙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과 인간 사회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물리 법칙을 발견하고 이해해나가는 연구 분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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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을 나눈다는 의미를 가진 분광이라는 단어는 분광학의 유래가 되는 뉴턴의 프리즘 실험을 잘 반영한다. (출처: Flickr)
1960년대 말. 영국의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방 안에서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태양빛이 프리즘에 통과하고, 이후 방 벽에 부딪히자 무지갯빛 스펙트럼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뉴턴은 빛이 여러 색의 혼합물임을 최초로 증명했고, 이것이 빛을 나눈다는 의미를 가진 분광(分光)학 연구의 시작이다.
분광학은 물체에서 흡수되거나 나오는 빛을 통해 그 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와 분자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화학이 발전하던 초기에는 새로운 원소 발견의 주된 도구로 쓰였고, 현재는 화학물질 분석과 구조 규명에 필수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 역시 물질과 빛의 상호작용 원리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분자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새로운 이미징 기술 개발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박진성 연구위원이 연구단에 합류한지는 4년째. 그는 연구단의 7개 세부 연구그룹 중 초고감도 간섭산란현미경을 개발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첨단 이미징 기술 개발을 통해 복잡한 세포의 내부를 실시간으로 선명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나노미터(nm) 크기 분자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며 “높은 시공간 분해능을 가진 새로운 이미징 기술을 통해 분자 수준에서 세포를 관찰하고,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단이 개발 중인 간섭산란현미경은 유리 표면 위에 놓인 수 나노미터 수준의 작은 입자에서 산란되어 나온 빛을 유리 표면으로부터 반사되어 나온 빛과 간섭시킴으로써 형성되는 빛의 패턴을 이용하는 이미징 기술이다. 약 15년 전에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최초로 개발되기 전까지는 관찰하고자 나노 입자에 형광 분자들을 부착한 후 형광 현미경을 이용해 입자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방식의 연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대부분의 형광 분자들은 빛에 노출됐을 때 형질이 변형되어 장시간 관찰이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 연구진은 간섭산란현미경(오른쪽)을 이용하면 광학현미경(왼쪽)에 비해 세포 내외부 구조를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출처: Chemical Science)
박 연구위원은 간섭산란현미경을 이용해 세포 이미징을 최초로 시도하고, 형광입자 없이 관찰이 어려웠던 세포를 선명하게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2018년 국제학술지 ‘케미컬 사이언스(Chemical Science)’에 게재되었다.
그는 “간섭산란현미경을 이용해 세포 내외부 구조를 관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관해서, 또 만약 가능하다면 기존 현미경들과 비교해서 어떤 장점들이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며 “실험 결과 기존 광학 현미경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세포 내외곽 구조들이 빛의 간섭 현상을 통해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세포의 동역학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간섭산란현미경 뿐만 아니라 여러 방식의 관찰기법을 동시에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구단 내 광열현미경 (photothermal microscopy) 개발팀의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의미 있는 연구결과도 냈다.
광열현미경은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빛을 굴절시켜 원래 물체의 위치를 엉뚱한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신기루 현상’을 응용한 첨단 이미징 기법으로, 세포에 형광 분자들을 부착하지 않고도 세포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특정 화학 물질들을 선택적으로 이미징할 수 있다. 연구진은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에 광열 현상을 유발시켜서, 형광 분자의 부착 없이도 살아 있는 신경세포의 가지를 따라 단백질을 수송하고 있는 소포체의 이동과 신경세포가 분열하는 과정에서 핵 내부 DNA의 공간 재배열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결과는 2019년 국제학술지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Letters’에 게재됐다.
▲ 연구진이 개발한 광열현미경을 이용해 희돌기교세포의 분열과정을 5분 단위로 포착한 모습. (출처: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Letters)
▲ 박진성 연구위원은 “연구현장에서 현미경을 이용해 세포를 관찰하는 일은 교과서 속 글과 그림으로 공부하는 것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라고 말했다.
간섭산란 현미경과 광열 현미경 이외에도 현재 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에서는 새로운 이미징 기법을 응용한 첨단 현미경 개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연구단 내의 다양한 연구그룹과 함께 각각의 시스템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통합현미경’을 개발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수년간 개발한 연구단 내의 이미징 시스템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세포 내부 미세구조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명 현상을 손쉽게 관찰할 수 있는 이미징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교통량이 많은 고속도로 나들목(IC)에서 특정 차량 한 대를 추적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광열현미경의 경우는 추적하고자 하는 차량의 위치 정보를 정확히 알려주는 반면에, 주변 도로망의 구조와 교통량과 같은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는 제공해 주지 못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간선산란현미경의 경우는 목표 차량의 주변 도로 환경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제공해주지만, 이와 반대로 추적차량의 현재 위치는 확인 불가능합니다. 현재 우리 연구단 내의 구성원들이 각자 개발하고 있는 이미징 시스템들의 장점을 결합한 통합 이미징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IBS 커뮤니케이션팀
권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