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라 무시하지 말아요, 제브라피시
우리집 어항에 있는 제브라피시가 우주에 간 적이 있다고?
1976년 5월 22일 구 소련의 우주 비행장. 우주선에 특별한 동물이 실렸다. 주인공은 은색 빛 몸에 검은색 가로줄무늬가 있는 열대어, 제브라피시였다. 우주 정거장 살류트 5호(Salyut 5호)를 발사에 제브라피시가 동원된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연구진은 우주 공간에서 저중력이 인체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고자 제브라피시를 실험대상으로 선택했다.
제브라피시의 우주 비행 경험은 한 번이 아니다. 구 소련은 살류트 5호 발사 이후에도 제브라피시를 수차례 우주에 보냈고 미국도 미항공우주국(NASA)이 중심이 되어 제브라피시를 우주선에 싣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표 실험모델인 쥐, 원숭이가 아닌 제브라피시가 우주비행사들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제브라피시의 매력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과학자들의 물고기 사랑
제브라피시(Zebrafish)는 은회색 몸에 가로 검은색 줄무늬가 얼룩말(Zebra)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다. 정식 학명은 Danio rerio다. 수명은 2~3년, 몸길이는 최대 4~5cm이다. 생명력이 강해 기르기 쉬워 가정에서도 관상용으로 많이 키운다.
제브라피시는 알부터 배아, 성체에 이르는 모든 발단 단계를 관찰하기 용이하다. 온몸이 투명해 신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배아 발달과정은 물론 약물이 체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육안으로 살필 수 있다. 굳이 살아있는 물고기를 죽여 샘플로 만들지 않아도 맨눈으로 관찰이 가능하니 실험동물로 안성맞춤이다.
제브라피시와의 만남, 연구에서부터 예술까지
최근 자폐증 원인 규명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연구가 있다.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신희섭 단장 연구팀, 충남대 생물과학과 김철희 교수 연구팀, 이탈리아 트렌토대 연구팀은 제브라피시를 이용해 동물의 뇌에서만 단백질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찾았다. ‘삼돌이(samdori)’ 유전자는 사람은 물론 쥐나 제브라피시 등 척추동물에 존재한다.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단백질 사이토카인을 만드는 여러 유전자를 찾던 중 세 번째로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다. 연구진은 쥐와 제브라피시에서 삼돌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할 경우, 제 기능을 못해 실험동물에서 우울증과 불안 증세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은 DNA 복구 메커니즘을 규명하는데 제브라피시를 이용하고 있다. DNA 복구 과정들을 세부적인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는데 생쥐 뿐 아니라 제브라피시도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다. 500여 개의 어항을 보유하고 있으며 약 3,000마리의 제브라피시를 사육하고 관리 중이다. 연구진은 유전자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다양한 돌연변이 제브라피시를 제작하고 DNA 손상 복구 메커니즘이 동물 개체의 발생, 생리,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DNA 손상에 관련된 유전자가 다양한 혈액 세포의 발생에 미치는 영향과 조혈 줄기 세포 발생에 필수적인 새로운 유전자를 찾는데도 제브라피시를 활용하고 있다.
연구 대상인 제브라피시가 예술 작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IBS에는 제브라피시를 주제로 한 작품이 다수 출품되었다.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에서는 현미경 기술을 새롭게 개발하고 연구 대상을 적용하는데 제브파피시를 이용한다. 연구자들은 제브라피시를 형광물질로 염색하거나 특수 현미경으로 관찰해 제브라피시의 뇌와 신경계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해 작품으로 제출했다.
한 마리의 용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제브라피시를 촬영한 것이다. 홍진희 연구위원은 제브라피시의 수초를 이루는 세포 안에 형광단백질을 발현시켜 공초점레이저 현미경으로 촬영했다. 부화 후 14일 된 제브라피시의 중추신경계 척수(spinal cord)와 말초신경다발들이 초록색으로 빛나는 모습이 마치 당장이라도 도약하려는 한 마리의 용처럼 보인다. 제목도 재치있게
붉은 빛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떠오르는 <바람에 흩날리는 잎새: 제브라피시 뇌 안에서>는 김문석 연구원이 출품한 작품이다.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뉴런의 모습이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잎새처럼 표현됐다. 김 연구원은 수정 후 2주된 제브라피시의 후뇌부 영역을 3차원으로 촬영했다. 뇌의 표면에서 100마이크로미터 깊이까지 복잡하게 분포한 신경세포인 뉴런을 보여줬다. 컴퓨터를 이용해 제브라피시 내부에서 일어나는 광학 왜곡까지 교정해 멤브레인에서 발생하는 간섭무늬까지 선명하게 관찰해내는데 성공했다.
인간의 노화를 알려주는 물고기, 킬리피시
최근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또 다른 물고기가 있다. 킬리피시다. 킬리피시의 고향은 아프리카 모잠비크와 짐바브웨다. 신기하게도 킬리피시는 우기 동안에만 잠깐 생겨났다 없어지는 연못에 서식한다. 건기에는 알 상태로 있다가 연못이 생기면 부화한다. 킬리피시는 부화한지 3주 만에 성숙해 노화되기 시작하는데 5달 만에 늙어 생을 마감한다. 비늘이 흐릿해지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상당수의 개체에서 종양이 발견되는 과정으로 노화가 진행된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다리오 발렌자노 박사 연구팀은 청록색 킬리피시의 유전체에 킬리피시가 유독 빨리 죽는 이유를 밝힐 수 있는 단서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킬리피시의 독특한 노화과정이 분석되어 유전학 논문으로 발표되자 킬리피시는 단숨에 노화 실험모델로 떠올랐다. 인간 노화에 얽힌 비밀을 풀 수 있는 물고기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